연말이 되면 다들 회고를 하지만,
저는 선뜻 회고에 손이 나가질 않습니다.
2019년에 평생 처음이었던 회고를 했습니다.
뒤로부턴 회고에 딱히 긴 시간을 들이지도 않고,
공개는 더더욱 하지 않게 된 것 같습니다.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
To-Do가 아니라 To-Be에 맞춰서 살다 보니까,
무슨 라이선스나, 어디 합격이나, 어떤 발표같은.
기깔난 카피가 나오는 성과가 잘 없는 것 같습니다.
많이 재고 신중한 성격이라 성취가 잦지도 않고,
실패를 다루기엔 회고보단 포스트모텀이 어울리니,
그냥 회고 쓰지 말아야겠다.
그런 심리 흐름인 것 같습니다.

대신 친구들이 하는 회고를 구경하는 편입니다.
어떻게 사나 궁금하기도 하고,
글마다 분위기가 제각기 달라서 재밌습니다.
그런데 올해는 회고들이 마냥 재미만 있던 건 아니었습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들어갔다가,
생각이 깊어져서 나온 글이 많았습니다.

긴 휴식기가 없었다면, 다들 경력이 만 5년이 넘어갈 겁니다.
의식적인 노력이 1만 시간의 법칙을 증명할 만큼 쌓일 시기인 듯 합니다.
복리의 마법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노력이 복리로 쌓이면 보이기 시작하는 허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허들에 도전하고, 넘고들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보고 감탄했던 포인트가 3가지 있었습니다.

첫째는 정면 돌파였습니다.
22년도에 이어 작년도 IT 시장은 좋지 않았습니다.
주변 환경의 변화에서 생기는 불안은 성과를 갉아먹습니다.
심지어 그게 layoff같은 큰 이벤트라면 에너지 소모가 상당합니다.
그 친구는 비슷한 시기에 올바른 일을 하는 것에 정신을 쏟았습니다.
설득하고, 토론하고, 논쟁하고.

괴롭고 일시적으로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결국 1년짜리 일기에서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재밌는 점은 그 친구가 운동을 좋아하는데,
언더아머 슬로건과 같은 한 해를 보낸 것 같았습니다.
“The Only Way is Through”
이건 public하게 공개된 글이 아니어서,
아쉽지만 공유하긴 어렵게 됐습니다.

둘째는 명쾌한 self-assessment였습니다.
친구들은 저처럼 고등학생 때 취업했습니다.
개발자로 취업하겠다는 목표를 이루고 나면,
그게 인생의 전부가 아니었음을 깨닫곤 합니다.
돌아보면 당연하지만, 수능과 비슷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남들에게는 대학교와 같은 주니어 시절을 겪으면서,
되고 싶은 것(To-Be)이 무엇인지를 깨닫기 시작합니다.
거기서 자연스럽게 To-Do를 유도하고,
연간에는 To-Be의 가닥만 더 잡아가는 모습이 눈에 띄었습니다.
신년에는 어느 정도의 사명감도 가져가려는 모양이었습니다.
이 포인트가 있었던 것은 2023 Retrospective Teaser였습니다.
필자는 사실 친구는 아니고 3년이나 후배인데,
시스템적 사고에 재능이 있어서 기대가 많이 됩니다.
티저의 본판은 언젠가 블로그에 올려줄 듯 합니다.

셋째는 team이나 community level influence였습니다.
팀이 레벨업할 수 있게 돕고, 발표하러 다니고 그런 것들.
그런 공유 활동을 쉽게 여기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것도 충분한 센싱 능력과 센스가 있어야 하는 일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쓸모있는 걸 공유한다는 건 어렵습니다.

이건 단순반복의 지겨움을 이겨내야 합니다.
배움에서 끝나지 않고 체화를 시켜야,
최적화나 scalable한 다음 길이 보입니다.
그제서야 영향력을 펼칠 수 있게 됩니다.
폴 그레이엄이 그토록 얘기했던 “Do things that don’t scale”입니다.
이 포인트가 있었던 것은 유난히 길었던 2023,
12월 31일에 작성하는 2023년 회고였습니다.

들었던 생각은,

1) 학교 다닐 때 프로젝트, 동아리, 해커톤 한다고 팀 많이 짰는데,
알고 보면 그 팀 하나 하나가 다 드림팀이지 않았을까?

2) 롤 모델이 가까이 있어서 좋은데,
이제 친구들 모아서 해커톤 나가긴 힘들겠지?

3) 역할과 기여할 목표가 모호해질 때가 많을텐데,
다들 쉬운 일만 하려고 하지 않고 잘 이겨내고 있구나.

4) 1, 2, 3년차에는 다들 얼레벌레 출근하기 싫다 푸념이나 했는데,
다들 뭔가 새로운 phase에 진입하고 있구나.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이걸 또 어찌 따라갈 수 있을까?
같은 생각을 하게 되는 연말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