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대표가 까라면 까야지’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회사와 직원은 갑과 을의 관계가 아니니까요.
계약서에도 회사와 직원을 ‘갑’과 ‘을’이 아닌 ‘A’와 ‘B’로 칭합니다.
서로에게 가치제안을 하는 관계이지 않나 싶습니다.

서로가 서로의 가치제안을 납득하지 못 하면,
회사는 직원에게 불합격, 수습 종료, 권고사직으로,
직원은 회사에게 오퍼 거절, 지원 취소, 퇴사, 이직으로 표현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직원이 회사에게 하는 가치제안은,
능력을 보여주는 것이 전부입니다.
하드 스킬, 소프트 스킬, 일머리 등이 다 조합돼서 일의 완수 여부가 결정됩니다.
그 과정은 어려울지라도, ‘일 잘 완수하기’라는 방향은 정해져 있습니다.

반대로 회사가 직원에게 하는 가치제안은, 형태가 다양합니다.
연봉, 스톡옵션같은 금전적인 보상,
식대지원같은 현금성 복지,
자율 출퇴근, 원격근무같은 근무 제도,
도메인, 소비자같은 업의 특성,
성장 가능성, 사업 확장 계획같은 앞으로의 로드맵 등등.

하지만 이 가치제안을 어렵게 만드는 세 가지가 있는데요,

첫째는 물리적으로 달성이 불가능한 요소가 있다는 점입니다.
렌터카 사업을 하고 있는 회사는, 커머스를 하고 싶은 엔지니어를 설득할 수 없습니다.
이 엔지니어를 꼭 데려와야 한다면,
비즈니스 방향을 틀거나 다른 요소에서 더 강하게 가치 제안을 해야겠죠.

둘째는 사람마다 성향이 다르다는 점입니다.
엄청 매력적인 사업을 해서 사회에 흔적을 남기고 싶어 하는 사람은,
따분한 사업을 하는 회사의 오퍼에 그리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있습니다.
시간을 갈아넣어 하루라도 빨리 기능을 릴리즈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워라밸을 챙기는 분위기의 회사에서 일하고 싶어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셋째는 다른 곳도 비슷하게 가치를 제안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다들 높은 연봉과 빵빵한 복지로 경쟁을 하고 있습니다.
이 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면, 여기선 기본값만 베팅하고, 우리만의 비대칭 전력을 내세우는 게 좋습니다.
투자 없이 bootstraping해 유지하고 있다던지,
회사가 고즈넉한 연남동에 있다던지,
국내에 몇 없는 B2B MMP를 개발하고 있다던지,
이런 브랜딩은 돈이 많아도 따라하기가 어렵습니다.

갖추기 어렵지만 아주 설득력 높은 가치제안이 하나 있습니다.
좋은 동료와 함께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제안하는 겁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좋은 사람 한두 명을 잘 설득해 봐야겠죠.